3월 초 어느 날.
남아 있는 겨울 찬바람이 싸~하지만 햇살은 따사로운, 그래서 수류탄 던지기 참 좋은 날이었다.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하나, 둘, 셋, 확인!”
훈훈한 고함소리가 듣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신교대 4주차를 맞는 훈련병들은 수류탄 교육주간을 맞아 어느덧 익숙해진 군생활을 스스로 대견스러워했다.
“수류탄? 그까이꺼~!”
하지만 작은 사과정도의 수류탄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실상을 알면 참으로 무시무시한 물건이다.
우리나라 K413 세열수류탄. 탄체 외의 파편구성품을 갖고 있는 수류탄은 의외로 드물다. 구형 K400도 몸체가 쪼개지며 파편이 되는 구조. 다만 잘 쪼개지도록 안쪽에 홈을 세겨놔서 위력은 양호.
K413 내부에 들어가는 텅스텐 큐브. 폭발하면 하나하나 파편이 된다.
쥐고 있던 안전손잡이를 놓으면 지연신관에서 약 5초를 머물다 작약에 불이 붙고, 그 폭발력으로 안에 둘러쳐진 수백 개의 텅스텐 큐빅을 사방으로 날려보내게 된다.
우리는 그 시뻘겋게 달궈진 작은 텅스텐 조각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많은 누군가의 몸통과 팔다리를 꿰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지금 훈련을 받는 것이다.
교관이 말하길 수류탄 한 발이 치킨 한 마리 값이라고 했으니, 살상력 가성비가 갑 오브 갑이다.
웹에 돌아다니는 이런 짤을 보고 수류탄이 대부분 베어링 등의 별도 파편체를 갖춘것으로 아는 경우가 있은데, 그렇지 않다. 생산단가 등을 이유로 이런 류의 수류탄은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수류탄을 이제 막 군복을 입은 신교대 4주차 햇병아리 손에 덜컥 쥐어줄리 없겠지.
며칠 동안 수류탄빙자 얼차려를 겁나게 돌린다.
그렇게 뺑뺑이를 돌리고도 실탄을 투척하는 날,
“어제 꿈자리 안 좋은 놈, 다 나와!”, “팔 컨디션 안 좋다고 생각되는 놈, 다 나와!”, “겁나는 놈, 다 나와!”, “그냥 던지기 싫은 놈, 다 나와!” 하며 조금이라도 이상징후가 있으면 다 빼버린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방심하다가 이렇게 된다.
방심하다가 이렇게 된다
하지만 실제 자의 또는 타의로 열외 되는 훈련병은 소대에서 한 두명 될까?
대체로 던지려고 한다.
그동안 이것 때문에 구르고 구른 게 얼만데….
수류탄 교장은 계단식 논 같은 지형에 있다.
맨 아래는 상당히 넓은 연병장(여긴선 각종 교육을 잘 받으라고 겁나 돌리고), 한 단계 위는 투척 대기장(이라며 겁나 돌리는 곳).
그래도 며칠을 돌고돌다가 아무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안전핀 뽑고 던질 정도가 되면 한 단 더 올라가는데, 그곳이 바로 투척장이다.
투척장은 시멘트블럭이 ‘ㄷ’자로 조적된 개인사로가 열 맞춰 10개가 있고, 그 앞 움푹 파인 지형에는 꽤나 큰 연못이 있다.
수류탄이 물속에서 터지면 쿠~웅 하는 중저음의 은은한 폭발음과 함께 물기둥이 아름답게 솟구친다.
하지만 상당수의 수류탄은 연못에 못 미쳐 경사로에 떨어지며 꽝~ 하는 큰 소리를 냈고, 이러면 아래 집결지에서 한바탕 뺑뺑이를 돌았다.
밑에서 조교가 말하길, 수류탄 무게가 있어 생각만치 못 날아간다고 누차 강조했다.
우리 분대 차례가 왔다.
나는 8사로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1사로부터 투척이 시작됐다.
밑에서 듣던 대로 동기들이 던진 수류탄 중 상당수가 물기둥에 못 미쳐 맨 땅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 터지고야 만다.
참 의아했다.
왜 저 웅덩이까지 못 던지지?
4사로, 5사로, 6사로….
전우들이 던질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투척거릴 가늠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머릿속으로 모든 설계가 끝나고 바로 옆 7사로 차례가 됐을 때다.
갑자기 수류탄교관 3소대장(나는 1소대)이 내 사로로 뛰어들었다.
그라시 7사로 훈련병의 수류탄이 던져지고, 우리는 두명이어서 좁아진 사로 안에 몸을 숙였다.
수류탄이 터지길 기다리는 잠깐 사이 3소대장이 말했다.
“야! 야! 저게 가까워 보여도 생각보다 멀리 안 날아가니깐 저 연못 너머까지 보낸다 생각하고 씨~게 던지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그 사이 내 차례가 왔다.
“안전클립 제거! 안전~ 핀!”
“투척!”
소대장의 진심어린 조언에 따라 그동안 머릿속에 계산 했던 것보다 훨씬 씨~게 던졌다.
저 연못 너머 평지를 향해.
“하나! 둘! 셋! 확인!”
어라?
방호벽 아래로 머리를 숙이기 전 확인한 내 수류탄은 정말 잘 날아가 저 연못 너머 평지에 떨어지고 있었다.
연못에 못 미쳐 터져도 움푹 파인 지형이라 파편이 밖으로 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못 너머 경사로 위까지 날아간 수류탄은…
고개 숙인 사로 안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중대장의 다급하고 거대한 외침이 들렸다.
“엎~드~려~!”
엄청난 당황과 절망, 분노, 걱정이 뒤섞인 외침이었다.
쨍~ 하는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돌덩어리들이 튀었다.
원래 그는 참 좋은 중대장이었다.
저 멀리 있던 참 좋은 중대장이 순식간에 내 사로까지 날아왔다.
“너! 엎드려뻗쳐! 푸쉬업!”
생각할 틈도 없이 한바탕 얼차려를 받았다.
“너 이 녀석, 왜 그랬어?”(워낙 좋은 중대장이어서 ‘이 새끼’라고도 안 했다)
개인호 땅바닥에서 일어난 나에게 중대장이 소리치며(하지만 매우 점잖았다, 그는 좋은 중대장이니깐) 물었다.
그 사이 나를 혼란에 빠뜨린 소대장은 도망쳤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무차별 구타나 욕설 없이 그는 제 위치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는 참 좋은 중대장이니까.
한 단계 아래 대기장으로 내려가니 조교가 간단하게 말했다.
“아까 소리 크게 난 놈 나와!”
그리고 나 혼자 특별하게 또 한바탕 굴러다녔다.
연병장으로 돌아와 우리 소대원이 다 모여 오와 열을 맞춰 앉았다.
옆에 있던 동료가 신나하며 내게 말했다.
“야, 야, 아까 봤냐? 어떤 새끼가 수류탄 던졌는데 소리 존나 크고 돌이 막 날아가더라.”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다 이 새꺄.”
… ….
수류탄이 조금은 무겁더라도 꽤나 멀리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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