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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제 17회 과학문화융합포럼이 '융합과 연구'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날 포럼에서 한양대 철학과 이상욱 교수가 '상상력과 융합연구'로 발제하고, 이어 UST-ETRI 캠퍼스 이성국 교수,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가 지정토론에 나섰습니다.

또 식전 행사로 중앙대 김형기 교수의 '과학과 예술' 발표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및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Shadow of Life #2' 등 작품 전시가 있엇습니다.

이 가운데 이상욱 교수의 '상상력과 융합연구'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포럼 자료집용 발제 원고>

  “상상력과 융합 연구”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1. 해당 주제의 현재 현황 

우리나라의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경제성장은 세계적으로도 ‘교과서적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정도로 모방형 압축성장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선진국이 달성한 기술 수준을, 선진국의 실패 경험과 성공 비결을 효율적으로 모방학습하여 선진국보다 휠씬 짧은 기간 내에 동등한 기술 수준에 도달했던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능력은 분명 국제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최근 우리의 기술발전 수준이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기술개발과 관련 제품 개발에 있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이 ‘모방’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런 탈추격 상황에서는 여태까지 매우 성공적이었던 ‘모방형’ 기술 개발에서 벗어나 기술 개발 선두 주자에 어울리는 ‘창조형’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의 기술 개발 수준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비젼’을 담은 제품 개발이나 기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등을 해본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기술 개발의 ‘상상력 빈곤’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러한 지적은 최근 애플의 창업자이나 전설적인 경영 귀재였던 스티븐 잡스의 죽음과 관련된 특집 기사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왜 삼성은 아이폰을 만들지 못할까?’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기 일쑤인 이런 기사들은 우리 기술 개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인간과 소통하는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분석을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생각은 발제자가 참석한 미래 기술 개발 관련 토론회 등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이들 지적의 핵심은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제품 개발 전략을 활용하여 사용자가 휴대 전화를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친구나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었기에 성공했다. 그에 비해 하드웨어적 성능의 우수함에 집착하는 삼성은 휴대전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이것이 삼성 제품의 한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케팅이나 소비자 패턴 분석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발제자로서는 이와 같은 ‘그럴듯한’ 분석이 정말로 맞는지를 판단할 능력은 없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삼성이나 애플 모두에서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테니 발제자가 특별히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탈추격 상황에서의 창조적 기술 개발을 논하는 맥락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안은 최근들어 부쩍 ‘상상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상상력은 휴대전화는 이러이러한 것이다는 식의 제한적 생각에서 벗어나는, 그래서 인간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자유로운 사고’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렇게 이해된 ‘상상력’을 포럼의 핵심 화두인 ‘융합 연구’와 관련시켜보자. 최근 융합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각종 모임, 학술토론 등이 무수하게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의견도 워낙 다양해서 많은 경우 같은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정말로 ‘융합 연구’로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 이유로 간단하게라도 발제자가 융합 연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발제자는 ‘융합 연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지 여부, 그리고 바람직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생산적인지 등에 대한 여러 질문들에는 하나의 답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융합 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분자유전학 연구에서 나노소재 재료를 가져다 쓰는 방식처럼 ‘도구적’ 성격의 학제간 연구에서부터, 미래기술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인문학자, 미래학자, 공학자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심층적’ 학제간 연구까지 다양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각각의 경우마다 그런 방식의 연구가 필요한지의 여부, 생산적일지 여부는 각각의 경우의 구체적인 조건에 비추어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탈추격 상황에서 융합연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연구가 융합 연구여야만 된다든지, 모든 사람들이 요즘 유행하는 ‘통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무리한 생각이다. 특정한 패러다임 하에서 선행 연구에 바탕하여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학술 연구의 진행 과정을 고려할 때 융합 연구 만능론은 현실성도 없고 정당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융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에서 새로운 시각, 연구결과, 방법론 등을 채용하여 구체적인 답을 찾아가는 문제풀이 중심 융합 연구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다양한 시각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적 분위기를 보장하는 융합 문화의 확산 역시 필요하다. 결국 발제자가 보기에 탈추격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구체적인 문제를 풀려는 노력과 관련된 융합 연구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융합 문화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된 융합연구와 융합문화와 ‘상상력’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발제자는 토마스 쿤의 유명한 ‘본질적 긴장(essential tension)’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쿤은 성공적이고 창의적인 과학 연구에 필요한 사고 능력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당면한 문제를 주어진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 이론, 방법론을 사용하여 어떻해든 해결해 보려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사고 능력이다. 이를 쿤은 ‘수렴적 사고 능력(convergent thinking)’이라고 명명했다. 특정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모범사례exemplar)를 잘 변형해서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유비 능력, 변형 능력, 통합적 사고력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정상 과학 시기에 과학지식의 축적적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수렴적 사고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물론 쿤도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틀을 깨는 사고’의 필요성 역시 인정했다. ‘발산적 사고 능력(divergent thinking)’이라고 명명된 이 능력은 과학 연구자로 하여금 자신이 교육받았고 익숙한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하거나 다른 학문 분야의 시각을 자신의 분야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발산적 사고 능력만이 강조되다보면 패러다임 내의 지식의 축적적 성장은 불가능해지고 다양한 생각의 풍성한 ‘펼쳐짐’으로 끝나고 말 위험성이 있다. 그런 이유로 쿤은 성공적인 과학 연구자라면 수렴적 사고 능력과 발산적 사고 능력을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따라 적절하게 결합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두 사고는 그 본성상 서로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발산적으로 사고하면서 동시에 수렴적으로 사고하라는 말은 둥근 사각형만큼이나 개념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쿤은 이 두 사고 능력 사이의 이와 같은 ‘본질적 긴장’을 잘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수렴적/발산적 사고 능력에 대한 쿤의 견해는 자연스럽게 수렴적 상상력과 발산적 상상력에 대해서도 확장될 수 있다. 생산적인 과학 연구는 우선적으로는 현재까지 확보된 기존의 연구 결과와 방법론에 근거하여 주어진 문제를 최대한 잘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의 연구 결과와 방법론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면 기존의 연구 결과와의 연속성이나 통합성이 확보될 수 있어 통합적 지식 성장과 세계 이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활용되는 수렴적 상상력, 즉 기존의 이론이나 모형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은 문제가 복잡하거나 문제 풀이를 위해 요구되는 난이도가 높을 수록 반드시 발산적 상상력, 즉 자신이 익숙한 이론적 틀을 넘어서서 대안적 이론이나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는 능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결국 셍신적인 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그저 ‘자유롭게’ 생각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발산적 상상력에 의해 적절하게 보완된 수렴적 상상력이다.  

실은 두 종류의 상상력이 ‘모두’ 필요한 상황은 과학 연구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칙센트미하이 등의 창의성 연구자에 따르면 분야를 막론하고 각 분야에 혁신적인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은 모두 쿤식으로 표현하자면 두 종류의 상상력 사이의 본질적 긴장을 잘 관리하여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낸 사람이었지 그저 ‘자유분방하게’ 실험적 사유와 연구에 몰두한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다. 20세기 미술의 혁신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는 피카소조차 철저한 모방의 시기를 거쳐 선배 화가와 동시대의 여러 화풍을 완전히 터득한 후 그것의 창조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화풍을 열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 물리학의 문제 의식(뉴턴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 사이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선배 및 동료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잘 알고 이를 자신의 연구에 활용하기까지 했던 젋은 아인슈타인이 ‘동시성’을 측정하는 방식을 새롭게 재규정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동일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탈추격 상황에서의 융합 연구에 필요한 상상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선 논의에서 우리는 상상력에 대한 최근 ‘열광’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과학 연구와 기술 연구를 포함한 전문 영역에서 창의적 연구를 위해 필요한 상상력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난폭하게 질주하는 ‘상상력’이기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의 개념, 지식, 방법론의 장점과 단점 모두에 정통한 상태에서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개념, 시각, 분과적 지식, 대안적 방법론을 탐색하고 이를 자신이 익숙한 것과 결합시켜 구체적인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이질적 상상력 사이의 적절한 관리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풀이 기반 융합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상력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 것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해주는 학술적으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융합 문화의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이상의 논의에 덧붙여 발제자는 융합연구에 적합한 상상력이 현재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모방을 통한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 선진국들이 ‘실패 비용’을 미리 부담했기 때문이다. 이때 ‘실패’는 단순히 개발 과정에서의 기술적(technical) 실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결국 인간에 의해 사용되기 마련이고 많은 경우에는 기존의 기술 시스템에 통합되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개발되고 얼핏 보기에 도저히 나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기술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칙은 기술 선진국이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자신들의 기술 개발 역사를 통해 터득한 교훈이다. 플라스틱, 프레온 가스, DDT 등이 이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이지만 이 원칙은 케빈 켈리처럼 기술개발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사람도 기꺼이 인정하는 원칙이다.  

게다가 기술의 수용 및 확산 과정에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에 반응하고 이를 변형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고려 도한 미리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특징을 보인다.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들은 전화기가 지금처럼 주로 일상적인 잡담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이 기능은 최근 문자, 카톡 등의 신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범용 기술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요약하자면 기술 선진국이 감당해야 했던 ‘실패 비용’은 단순한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만이 아니라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의 기획 단계부터 그 기술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과정에서 출현한 여러 예기치못한 사회적 결과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문제는 이제 기술 선도국으로서 우리나라가 이러한 비용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비용, 특히 원칙적으로 지불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비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어덯게 기술을 기획하고 어떻게 기술을 개발하며 어떻게 기술을 확산시켜야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를 배울 앞선 기술 선진국이 없는 상황(적어도 몇몇 기술 분야에서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기술 분야에서)에 처한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 본 경험이 없다. 실은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이제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직접 풀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인식’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더욱더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사실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매우 ‘깊은’ 수준 융합적 대응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 세상을 결정하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기술과 인간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공진화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결과를 기술 개발에 반영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그리고 예상불가능한) 결과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면서 끊임없이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대응책을 모색하는 일은 정말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문제풀이 기반의 융합 연구를 넘어선, 거시적인 규모에서 심층적으로 융합적인 연구를 기술 개발 전반에 대해 수행해야만 한다. 

즉, 기술 개발과 관련하여 특정 기술적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관련 분야 지식, 방법론, 개념 등을 활용하는 상상력의 수준을 넘어서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고려를 아우르는 기술 개발의 전반적인 흐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히 학술적 연구의 틀에 갖혀 있는 쿤의 두 상상력 개념을 넘어서는 인문학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확장된’ 상상력이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우리는 아직 어떻게 상상력을 ‘확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실망스러운 현실이 상상력의 확장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선진국의 사례를 보고 배우는 방식으로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해 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진정으로 심층적인 융합연구의 필요성에 직면하여 어떻게 상상력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확장시킬 것인지를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제, 또 다른 ‘본질적 긴장’을 적절하게 관리할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2. 융복합분야(과학기술/인문사회/문화예술 등)에서 창출 가능한 성과 

이상의 논의를 통해 융합 연구에서 상상력의 생산적 활용을 위해 두 가지 당면 과제를 설정할 수 있다. 첫째는 융복합 연구에서 일상적으로 제시되는 구체적인 문제풀이 상황에서 어떻게 각 학문 분과기반 지식, 기법, 개념, 사고틀 사이의 생산적 활용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이다. 발제자가 보기에 이런 상황에서 발산적 상상력과 수렴적 상상력의 생산적 조합은 자신의 분야 지식, 기법, 개념, 사고에 철저하게 기반한 채 열린 마음으로 다른 분야의 지식, 기법, 개념, 사고를 도입하고 변형하여 활용하는 방식으로 융합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휘될 수 있다. 

둘째는 탈추격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 과학 연구 및 기술 개발의 종합적 전망을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바람직한 삶의 모습에 대한 통찰력, 우리가 마땅히 만들어가야 할 미래사회의 모습 등에 근거한 방식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상상력은 분과학문 사이의 구체적 문제 해결을 위한 편의적 제휴에서 발휘되는 상상력을 넘어서서 보다 포괄적인 시각과 통합적인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확장된 상상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해당 주제의 성과 극대화 방안 

발제자가 보기에 융합 연구에서 상상력이 생산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세 요소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문제 풀이 상황에서 관련 분과학문의 지식과 시각을 편의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하는 수렴적-발산적 상상력의 조화, 보다 복합적이고 영향력이 큰 거시적 문제 해결을 위한 ‘확장된’ 상상력의 발휘, 그리고 이 둘 모두를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융합 문화의 조성이다. 

이 중 첫째는 이미 학문 내적 필요성에 의해 많이 진행된 상태이고 최근 융복합 연구에 대한 제도적 강조 등에 의해 상당한 변화가 감지될 수 있는 과제이다. 그에 비해 둘째 과제에 대한 관심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최근에 시작되었고 아직 어떤 방식으로 상상력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할 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발제자는 이 과정에서 충돌하는 ‘전문성(expertise)’의 조정이 매우 중요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를 포함해서 여러 생각들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셋째 과제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교육과정을 통해 학제적 연구와 융합적 시도에 대해 보다 수용적인 태도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융합 연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융합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정통’ 연구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편견(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을 불식시켜야 하고, 동시에 융합 연구의 질적 수준을 관리하기 위한 학술적 노력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해당 주제의 정책 방향 또는 제언

- 문제풀이 기반, 편의적 융합 연구의 활성화
- 거시적, 복합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심층적’ 융합 연구를 위한 상상력의 확대
- 융합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및 융합 연구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학술적 논의 증진 (융합 문화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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